배가 아프면 배를 문지른다. 머리가 아프면 이마를 만진다. 아프면 왜 아픈 부위에 손을 갖다 대면 덜 아픈걸까?
그 이유에 대한 설명은 여러 가지가 있다. 다친 부위를 만지면 압력이 분산되어 통증이 줄어든다고 한다. 만지면 뇌가 통증을 인식하는 자각의 강도가 낮아진다고 설명하기도 한다. 그러나 가장 설득력 있는 설명은 '게이트 컨트롤 이론(Gate Control Theory)'이다. 1965년 심리학자인 멜잭과 해부학자인 월이 주장한 이론이다.
통증 연구 역사에서 가장 혁신적인 성과로 평가받는 이 논문에서 멜잭과 월은 통증에 관한 일반적인 인식을 크게 바꿨다. 통증이 상처에서 뇌로 직접 전달되는 것이 아니라. 중간에 있는 '게이트'를 통해 조절된다는 이야기이다. 척추에 있는 이 게이트가 열려 있는지, 닫혀 있는지에 따라 통증을 느끼는 정도가 달라진다는 것이다.
신경에는 촉각과 압각을 전달하는 '두꺼운 섬유(A-beta 섬유)'와 통증을 전달하는 '세밀한 섬유(A-delta 섬유와 C 섬유)'가 있는데, 이들이 전달하는 신호의 상대적인 강도에 따라 통증이 달리 느껴진다. 이때 촉각이나 압각을 전달하는 A-beta 섬유는 통증을 전달하는 A-delta 섬유나 C섬유보다 빨리 전달된다. 다시 말해, 촉각이나 압각이 먼저 뇌에 전달되어 통증을 전달하는 게이트를 닫아버린다는 것이다.
그 결과 아픈 부위를 문지르거나 누르면 덜 아프게 느껴진다. 그래서 '엄마 손은 약손'이라는 말이 생겨난 모양이다. 단지 육체적인 통증에만 해당되는 이야기가 아니다. 마음이 아플 때도 마찬가지다. 아이가 울면 엄마는 안아주거나 토닥여준다. 아이들에게만 그러는 게 아니다. 슬픈 일을 당한 사람을 위로할 때도 마찬가지다.
그 어떤 말로도 위로할 수 없는 상황에서 우리는 그저 상대방을 껴안아준다. 만지면 위로가 되기 때문이다. 심지어 곁에 없을 때는 문자 메시지로 '토닥토닥'이라는 의성어나 이모티콘을 보내 상대의 아픔을 어루만지려 한다.
불안하면 자꾸 팔짱을 낀다
너무 슬픈데 아무도 나를 위로해주지 않을 때, 우리는 스스로를 만진다. '셀프 터치(self touch)'라고도 한다. 보다 전문적인 심리학적 용어로는 '자기 위안적 터치(self-soothing touch)'라고 한다. 셀프 터치는 자신이 터치의 주체인 동시에 객체가 되는 아주 특이한 현상이다. 스스로를 만질 때, 주체와 객체의 관계가 허물어진다는 의미다. 이는 인간 발달에서 '상호주관성(inter-subjectivity)'이 먼저고, '주관성(subjectivity)'은 이 후에 형성된다는 문화심리학적 주장과 아주 깊은 관계가 있다.
스스로를 만지는 것은 아기 때부터 나타나는 현상이다. 생후 6개월 동안 아기는 아주 활발한 셀프 터치 행동을 보인다. 이를 통해 자신의 몸이 독립된 개체라는 것을 인식하게 되고, 손을 어떻게 사용하는지에 대한 인지적 도식을 획득한다. 아주 최근 연구에서도 그 과정은 증명된다. 텍사스 오스틴대학의 연구진이 2024년 학술지 'Current Biology'에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셀프 터치를 자주하는 아기들의 자아 인식이 더 일찍 발달한다고 한다.
연구자들은 아기의 이마와 볼에 작은 진동 디스크를 부착해 아기의 셀프 터치를 유도했다. 이렇게 셀프 터치를 유도한 아기들은 그렇지 않은 아이들에 비해 코에 립스틱이나 물감을 묻혔을 때, 거울을 보고 지우려는 시도를 더 많이 했다.
거울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더 일찍 알아본다는 뜻이다. 이뿐 아니라 이 아이들은 '나(me)'라는 인칭대명사를 더 많이 사용하며, '내 거야'와 같은 표현을 더 많이 했다. 이런 행동들은 '자아 인식'의 중요한 지표이다. 즉, 셀프 터치를 많이 한 아이들의 자아 인식이 더 빠르다는 이야기가 된다.
셀프 터치가 자기 위안이 되는 이유는 엄마 품처럼 안정적인 상호작용으로 회귀하려는 행동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불안하고, 외롭고, 슬플수록 자신의 신체를 만지는 것이다.
미국의 노스다코타주립대의 연구진은 '팔짱 끼기(Arm-Crossing)'의 심리적 의미와 영향에 대한 실험을 진행했다. 일단 피험자를 팔짱을 끼도록 유도한 집단과 그렇지 않은 집단으로 나 눴다. 그러고는 잠재적 위협 상황에 관한 다양한 시나리오를 제시했다. 그 결과 '팔짱을 낀 그룹의 사람들이 '도망가기' 혹은 '탈출하기' 같은 회피 반응을 더 많이 보이는 것을 확인했다.
상하가 명확한 집단에서 지위가 높은 사람일수록 팔짱 끼는 행동을 자주 한다. 권위를 세우고 상대방을 존중하지 않는 태도로 여기기 쉽지만, 심리학자 눈에는 그저 불안한 행동으로 보인다.
위로 올라갈수록 외롭다. 중요한 결정일수록 혼자 해야 하고 그 책임은 오롯이 자신의 몫이다. 그래서 자꾸 자신을 만지는 것이다. 너무 힘들어 도망치고 싶다는 뜻이다(보편적으로 남자가 여자보다 팔짱을 더 자주 낀다).
사랑의 본질
터치와 같은 직접적인 정서적 유대의 중요성을 증명한 실험이 있다. 미국 심리학자 해리 할로의 원숭이 실험이다. 1958년 발표된 '사랑의 본질(The nature of love)'이라는 논문에서 해리 할로는 생명체에게 '부드러운 접촉'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눈이 번쩍 뜨이게 설명한다. 논문 제목부터 참으로 단언적이다. '사랑의 본질'. 할로가 원숭이 실험을 하게 된 계기는 철망으로 된 우리에 갇힌 새끼 원숭이의 태도 때문이었다. 철망우리 바닥에는 천을 깔아두었다.
그런데 더러워진 천을 치우려 하면 새끼들은 매우 신경질적으로 반응했다. 마치 어린이의 '애착 인형'을 빼앗을 때와 유사한 반응이었다. 천이 깔려 있지 않은 철망에서 키운 새끼들은 충분한 먹이가 공급되어도 채 5일을 넘기지 못하고 죽었다. 원뿔 모양 철망을 천으로 감싸 우리 안에 넣어주니 새끼들의 생존율이 높아진 것으로 나타났다.
할로는 이 현상을 제대로 살펴보기로 했다. 그는 갓 태어난 원숭이에게 두 종류의 대리모를 제공한다. 하나는 '철사 대리모', 다른 하나는 ‘천 대리모'이다. 철사 대리모에게는 젖병이 달려 있어서, 때가 되면 먹을 것이 충분히 제공되었다. 천 대리모는 부드러운 천으로 덮여 있지만, 먹을 것을 제공하지 않는다. 두 종류 대리모를 대하는 새끼 원숭이 태도를 관찰하는 것이 연구의 목적이었다.
새끼 원숭이는 어떻게 행동했을까? 예상대로 새끼 원숭이는 대부분의 시간을 천 대리모에 매달려서 보냈다. 먹을 때만 철사 대리모에게 옮겨왔다. 그러나 먹이를 다 먹으면 바로 천 대리모에게 옮겨갔다.
심지어는 천 대리모에 매달려서 철사 대리모의 먹이만 빨아 먹는 모습도 보였다. 특히 불안하거나 낯선 대상이 나타나면 바로 천 대리모에게 매달렸다. 천 대리모가 없을 때는 공포에 질려 꼼짝도 못하는 모습을 보였다.
해리 할로는 이 실험에서 '접촉 위안(Con tact Comfort)'과 '안전 기지(Secure Base)'라는 개념을 이끌어냈다.
그 당시 애착 관계는 '음식 제공 등과 같은 외적 보상으로 형성된다는 '행동주의심리학'이 유행할 때이다. 그러나 외적 보상보다 더 중요한 것은 촉각적 위로와 따뜻함이라고 할로는 반박 했다. 할로의 실험과 주장은 같은 해에 발표된 존 볼비의 '애착 이론(Attachment theory)'과 더불어 현대 발달심리학의 발전과 응용에 크게 기여했다.
사랑에 빠지면 왜 키스를 할까?
'감각 및 운동 호문쿨루스(Sensory and Motor Homunculus)'라는 희한한 그림이 있다. 뇌의 어떤 부위를 자극하면 신체의 특정 부위가 반응한다는 사실에 기초해 미국 태생 캐나다 신경외과 의사인 와일더 펜필드가 작성한 신체 지도이다. '호문쿨루스'는 라틴어로 '작은 인간'을 뜻한다.
'호문쿨루스'는 뇌에서 신체의 해당 부위가 차지하는 중요성을 표현한 그림이다. 뇌가 에너지를 가장 많이 쓰는 신체 부위를 그린 것이다. 이 그림을 보면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면 하게 되는 행동이 비로소 설명된다. 남녀가 가까워지면 서로 손을 잡는다. 조금 더 친밀해지면 서로의 입술을 갖다 댄다.
도대체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면 왜 꼭 손부터 잡는 걸까? 그리고 수많은 신체 부위를 놔두고 하필 입술과 혀를 서로 갖다댈까? 발가락이나 이마를 서로 비비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나의 뇌가 가장 많이 활용하는 부위를 사용해 상대방을 느끼고 싶어서 그러는 것이다.
이는 남녀 관계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다. 아기가 예쁘면 쓰다듬고, 뽀뽀를 한다. 강아지에게도 똑같다. 아끼고 사랑하는 대상을 나의 뇌신경이 가장 많이 사용되는 부위로 느끼고 싶어서 그러는 것이다.
출처: 매경ECONOMY | 2025.3.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