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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8년 동물학자인 존 B 칼훈 박사는 쥐 사회(유니버스 25)실험을 한 것으로 유명하다. 실험 공간은 가로세로 2.7m, 높이 1.5m 공간에 4쌍의 쥐를 풀어놓았다. 이곳에는 16개의 수직 통로가 있었고 중앙 광장을 기점으로 각각의 방들이 다층으로 둘러싸는 형태로 최대 쥐 3,300마리를 수용할 수 있는 넓은 구역에 충분한 먹이와 물, 번식 공간을 위한 재료는 주기적으로 주었다. 온도 또한 최적의 온도로 계속해서 위생 관리를 해주었다.
 
이곳은 쥐가 딱히 먹이를 찾아 나서지 않아도 될 정도로 풍족했으며 추위와 더위, 목마름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고, 배설물 또한 사람의 손에 의해 청결하게 유지되었다. 이론상으로 3,300마리의 쥐가 스트레스 없이 쾌적하게 살 수 있는 충분한 공간으로 그야말로 쥐의 낙원이라 불린다.
 
그러나 8마리로 시작한 쥐의 낙원은 지옥으로 바뀌기까지 오래 걸리지 않았다. 600일째엔 2,200마리까지 늘어났는데, 이때부터 개체별 경쟁이 심화하여 우세한 수컷들은 방 하나를 독차지하고 쾌적한 환경에서 암컷을 마음껏 고를 수 있었다. 하지만 이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 생식보다 경계를 우선했고 암컷 역시 몰락을 경계하다 자기 새끼를 버리거나 죽였다.
 
이렇게 쥐의 낙원 멸망은 제한된 공간 안에 개체 수가 증가하며 진행되었다. 흥미로운 점은 낙원의 최대 수용치인 3,300마리를 채우지도 못하고 2,200마리에서 쇠락의 길로 접어들었다는 점이다.
 
4쌍의 쥐가 투입된 단계는 적응 단계이다. 쥐들은 처음부터 생존에 필요한 행동을 할 필요가 없었다. 그렇게 105일째가 되던 첫 새끼가 출산하면서 본격적으로 개체 수가 늘기 시작하였다. 105일부터 315일까지는 성장 단계로 이 기간에 55일마다 개체 수가 2배씩 증가하며 620마리까지 늘어났다. 315일부터 560일까지는 침체 단계로 이 단계부터 쥐의 출산율이 하락하게 되는데, 이때는 145일마다 개체 수가 2배로 늘어나면서 더디게 성장하였다.
 
침체 단계에 접어들면서부터 쥐들은 이상행동을 보이기 시작했다. 약 100마리의 쥐들이 소량의 먹이를 차지하기 위해 서로 싸우거나 특정 비좁은 공간에 많은 쥐들이 모여 생활하는 모습들이 관찰되었다.
 
1962년 사이언티픽 아메리칸 기사 "인구 밀도와 사회 병리학"에 실린 캘훈의 초기 쥐 서식지 중 하나를 묘사한 그림(국립의학도서관).

 

충분한 먹이와 물을 공급해 주었음에도 먹이 경쟁과 비효율적인 생활을 하고 있었던 이유는 개체 수가 증가하면서 (영역) 다툼이 잦아졌고, 따라서 경쟁에서 승리한 개체와 밀린 개체들로 나뉘게 되었다. 이렇게 우월한 개체는 넓고 쾌적한 상자를 골라 먹이와 물을 풍족하게 독차지하게 되었고 경쟁에서 밀린 개체는 비좁은 공간과 적은 먹이로 집단생활을 해야 했다. 잦은 다툼 속에서 스트레스만 받은 쥐들은 자기 새끼들조차 죽이고 먹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그리고 이런 다툼에서도 밀리거나 싫증이 난 쥐들은 중앙 광장에 모여 생활하게 되었다.
 
출산도 뚜렷한 차이를 보였다. 예를 들면 우세한 쥐와 파트너가 된 암컷은 출산이 가까워지면 넓은 상자에서 종이나 톱밥을 모아 환경을 만들고 새끼가 다 지랄 때까지 정성스럽게 돌보는 모습이 보인 반면 경쟁에 밀린 쥐의 경우 새끼를 낳거나 돌볼 공간이 부족해서 덜 자란 새끼를 내쫓거나 포기하는 경우가 많았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열악한 환경에서 낳은 새끼들의 사망률이 90%까지 올라가기도 하였고 우세한 쥐들의 출산율 역시 감소하는 현상이 나타났다.
 
이 침체 단계에서 다른 현상들도 목격되었다. 이를테면 둥지가 아닌 낙원의 중앙에서 생활하는 개체들이 나타났다. 이 개체들은 먹이를 차지하려는 의지가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때문에 밤에 나오는 먹이나 남은 먹이를 먹었으며 짝짓기에도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덜 성숙한 개체들이 낙원 중앙에서 어린 개체들과 어울리며 어린 암컷과의 짝짓기, 동성애 등 불완전한 상황들도 관찰되기도 했다.
 
이렇게 출산율이 점점 감소하면서 쥐의 개체 수는 2,200마리까지 정점을 찍었다. 출산율뿐만 아니라 개체 수까지 줄어들었다. 수컷들은 경쟁 자체를 하지 않았고 짝짓기에도 관심을 보이지 않아 출산율이 떨어졌고 설령 새끼를 낳는다 해도 새끼들을 키우려 하지 않았다. 그렇게 저출산과 고령화에 맞물려 개체 수가 줄어들기 시작한 것이다.
 
이렇게 낙원에는 경쟁이 없어져 평화가 찾아온 듯 보였다. 경쟁이 없어지자 다툼이 벌어지지 않았고 공간이 넓어져 다시 개체들이 쾌적한 삶을 살아갈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다시 예전으로 낙원의 모습을 되찾은 듯 보였다.
 
하지만, 이상하게 젊은 쥐들의 출산율은 올라가지 않았다. 각 계층 모두 번식에는 관심을 보이지 않고 독립적인 성향이 두드러지게 나타났던 것이다. 쥐들이 노화나 병사로 줄어들어 예전의 여유 공간이 확보되었음에도 잔존하던 쥐들은 번식에는 전혀 관심이 없고 자신을 꾸미는 데에만 치중했다.
 
쥐가 거의 남지 않는 상황까지 왔음에도 쥐들은 여전히 사회적 소통과 그로 인한 갈등이나 성취감 등에 일절 관심조차 두지 않고, 번식조차 그만뒀기 때문에 먹이와 털손질 등만 하였고 1,800일쯤에는 결국 마지막 쥐가 사망하는 것을 끝으로 실험은 종료되었다.
 
 

인류의 파멸

 

쥐의 사회(유니버스 25)실험이 말해주듯 경쟁이 지나치면 파멸로 이어질 수 있다. 지구가 수용할 수 있는 적정 수를 넘어섰을 때 사회적, 경제적, 환경적으로 다양한 문제를 야기한다.
 
이 지구에는 인간만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동식물과 어우러져 살아가고 있다. 그런데, 인간이라는 종이 무분별하게 번식하면서 산림을 훼손하고 환경적 오염을 일으키고 거기다 식량 문제까지 야기하여 전체적으로 악영향을 끼친다.
 
문제는 각 나라마다 경제라는 명목으로 고령화와 과잉 인구에도 불구하고 인구가 곧 국력이라는 생각을 바꾸지 않는다. 과잉 인구가 인류에 어떤 영향을 미치든 출산을 장려하는 건 그만큼 이기적인 생각에서 시작한다. 불필요하게 경쟁을 만들어 서로 다투게 하고 범죄를 유발하고 갈등으로 인해 국가 간의 분쟁을 일으킨다.
 
한편, 인구는 그 국가의 가장 중요한 생산요소로 생각한다. 인구가 많다는 건 투입할 수 있는 노동력이 풍부하다는 뜻이다. 인구 중 15세에서 64세에 해당하는 연령의 인구를 ‘생산가능인구’라고 부르는데, 국가의 생산이 증가하기 위해서는 이 생산가능인구가 지속적으로 공급되는 게 핵심이다. 65세부터는 노인 인구로 분류된다. 이들은 생산 활동에 참여할 수 없고 참여해도 생산성이 그렇게 좋지 않다.
 
생산가능인구가 줄어들기 시작하면 떨어진 생산력으로 인해 경제 규모도 축소된다. 생산은 줄어드는데, 노인에게 들어갈 비용이 늘어나는 셈이다. 그만큼 생산가능인구 한 명이 책임져야 할 노인 인구가 점점 증가하게 되는 것이다. 인구의 증가는 국가의 총생산을 증가시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렇게 총생산이 커지게 되면 실업률이 낮아지고, 공급과 수요가 활발해지므로 물가가 덩달아 낮아지게 된다.
 
하지만 여기에 문제가 있다. 과학의 발달로 자동화가 가능한 시대에서는 더 이상 인구가 국력이라는 말은 통하지 않는다.
 
쥐의 사회(유니버스 25)실험에서도 잘 나타나듯 경제 활성화만 강조하다 보니 경쟁에 염증을 느끼는 세대들은 해탈한 삶을 살고 싶어 하는 집단이 생겨나 버렸다. 이들은 풍족한 삶을 바라지 않고 물질적 욕심도 없다.
 
일본의 경우 나이가 많은데도 아르바이트에만 전전하거나 돈이 필요할 때만 일을 하고 돈이 많이 들지 않는 스마트폰이나 게임을 통해 소소하게 재미를 느끼며 일상을 보낸다. 사회적으로 보면 생산 활동에 소극적이어서 경제에도 큰 타격이 되어 사회적 이슈로 떠오르고 있다.
 
염증을 느낄 정도로 스트레스를 받게 되면 의지가 저하되면서 의욕을 상실하고 흥미를 잃게 된다. 흥미를 잃는다는 건 다른 것에 관심을 주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흥미가 없으니 결혼은 무의미하고 물질적 성공에도 흥미를 느끼지 않는다.
 
의료대란을 보더라도 하루아침에 벌어진 게 아니라 코로나 여파로 환자가 급격하게 늘어나면서 일상생활이 송두리째 바꿔 버린 것.
 
한편, 성공한 집단을 보면 서로 싸워서 승리로 이끈 것이 아니라 조직 내 협업을 중요하게 생각했기 때문이다. 부서 내에서 구성원 간 업무 배분, 부서 간 협업 또한 마찬가지다. 공동의 목표를 위해 다수가 함께 일을 하고 함께 성과를 만들어 가는 것이다. 문제는 서로가 협업하면서도 마음 한편에는 내 부서가 더 좋은 평가를 받아야 하고 더 가치 있는 일을 맡기를 바란다. 이들 마음을 한데 모으는 데에는 리더의 몫이다.
 
경쟁만 부추기는 조직이라면 당장은 좋은 성과를 가져다줄지 몰라도 오래가지 못하고 무너지게 되어 있다. 정부는 바로 이런 마인드다. 지금의 문제는 인구 감소가 아니라 과학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는 데에 있다. 지금의 과학이라면 부족한 생산인구를 충분히 대체할 수 있다. 그러면 고령화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과학을 제대로 사용하는 때가 오면 오히려 인구가 많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과학이 발달하기 이전에는 수명이 짧았던 탓에 세대교체가 자주 대체되었지만, 현재는 평균 수명의 증가로 고령화사회와 저출산까지 맞물려 향후 전 세계 대부분의 국가에서 노인 인구가 유소년 인구를 넘어설 전망이다.
 
생산인구를 일정 수준에 머물게 하고 싶다면 젊은 세대로 교체되어야 하지만 수명이 길어진 탓에 변화는 필연적일 수밖에 없다.
 
경쟁을 치르면서 혐오감을 느낀 세대들은 이를 회피하려는 마음에 자포자기의 삶이 되는데, 경쟁이란 부와 권력을 쟁취하기 위해 허용되는 폭력은 유효하며 정당화될 수 있다. 언제나 그렇듯 생리적 욕구가 충족되면 권력 다툼이 벌어진다는 것이다. 그러나 적당한 경쟁은 발전시키는 동기가 된다.
 
안타까운 점은 처음부터 먹이가 부족했더라면 협업이란 동기가 부여되므로 적당한 긴장감을 통해 목표(먹이활동)를 이루려는 행동을 했을 것이다. 그러면 멸망은 자연스레 늦춰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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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BY
코코넛 팜스
과학 오피니언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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