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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이 국가에게 해야 할 의무가 있는 것처럼 국가도 국민에게 해야 할 의무가 있다. 그렇다면 국가란 우리에게 어떤 의미이며 국가가 존재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원시적인 사회에서는 소수의 집단이 무리지어 부족형태로 생활해 왔다. 소수가 모여 생활하다보니 불편한 부분이 한두 가지가 아니어서 작은 마을을 만들게 된다. 그런데 규모 있는 집단이 되면 마을을 관리하며 주민의 안전을 책임져줄 군주가 필요하였는데, 이것이 국가의 시초가 되었다.


마을이 더 모이고 모여 하나의 거대한 사회를 이루게 되자 국민을 보호하고, 생활의 안정을 보장하기 위해 치안센터가 생겨나고, 교육기관이나 의료기관을 만들어 생활을 더욱 윤택하게 만들어 주었다. 그런데 기관을 관리하고 유지하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한데 그 때문에 국민이 세금을 내고 있다.


국가란 오랜 세월을 거쳐 국민의 행복을 우선으로 해서 발전해 왔다. 그런데 국가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생각해보라는 말이 가슴에 와 닿지는 않는다.


만약, 국가를 유지하려는 유일한 이유가 국가의 이익이라면 다른 지역에 흡수되어 관리되는 게 오히려 더 낫다.


역사적으로 볼 때 최초 원시 사회에는 무수한 공동체 사회가 존재해왔지만 대부분 사라지고 지금은 수백 개 정도의 덩어리(국가)로 남아있는 상태다. 하지만 후대에는 이 수마저 줄어 수십 개가 되고 나중에는 국가라는 집단을 찾아 볼 수 없게 될게 분명하다.


선대들은 나라를 지켜야할 의무를 갖고 셀 수 없이 무수히 싸워왔는데, 생각해보니 지금은 의미 없는 전쟁에 지나지 않고 또 지금의 국가도 언젠가 사라져 버리게 된다.


천년 후나 혹은 훨씬 뒤가 될지도 모르지만 그토록 지키려했던 국가는 가치 없고, 무의미하게 먼지처럼 역사 속으로 사라져 버리는 것이다.


예를 들어 한니발, 구스타브 2세, 칭기즈칸, 나폴레옹, 티무르, 알렉산더 대왕 등 전쟁으로 그토록 수없이 싸워왔는데, 지금은 흔적만이 남아있는 상태이다. 당연히 국민이 원했던 전쟁도 아니었고, 수많은 사상자만 낸 인물인데도 그럼에도 이 모든 게 국민을 위한 전쟁이었을까?


선대들은 원치 않는 전쟁의 고통을 받아왔으며 이들에게 행복이란 그저 사치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극단적으로 생각해 보면 우주로부터 재난이 닥치거나 아니면 천재지변이 발생한다면 분명 어느 한 국가가 해결해야할 문제는 아니다. 어느 한 국가가 아니라 모두가 함께 풀어 가야할 공공의 문제로 인식이 바뀌어야 한다.


때문에 국가의 존재 이유는 오로지 국민의 행복을 위해서 존재하는 것인데, 더 이상 행복을 보장할 수 없다면 국가가 존재할 가치 또한 사라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어느 누구도 국가를 위해 희생할 필요가 없다.


새로운 집단이 창건되는 이유가 전쟁 때문일 수 있고, 재난 때문일 수 있다. 아니면 밝은 미래를 바라는 국민의 투쟁에서 시작될 수 있다.


원인이 어디에서 시작되든 국가라는 집단이 먼 미래에는 가치 없이 영원히 사라져 버리고 전혀 다른 집단으로 거듭나 그 맥을 이어가게 된다. 그러므로 국가를 위한 희생이 아니라 오로지 개인의 행복을 위해서만 존재한다.


문명이 발전하니까 국민들의 입맛도 점점 까다로워지고 있어 국가의 이익에 의한 논리로는 오히려 설득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유럽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테러는 우리를 끊임없이 위협하고 있고, 공산주의 국가는 여전히 국민을 희롱하고 억압하며 착취하는데, 우리가 언제까지 두려워해야할까?


분명한건 테러에도 이유가 있고, 원인이 있다. 유럽 지역에서 스페인과 포르투갈에는 테러가 없는데, 그 배경과 원인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대부분의 국가가 보유하고 있는 군사적 무기는 여전히 서로를 위협하고 있어서 폭력적으로 보일 수밖에 없는데도 이를 방조하고 있는 국가에게 책임을 묻고 싶다.


통신을 발견하기 전에는 각기 나름대로 국가를 운영해왔고, 모든 문제를 스스로 해결해야 했기 때문에 어려움이 많았는데, 이제는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


다른 지역 사람들의 생활을 엿볼 수 있고, 경제가 활발해지면서 자연스레 서로의 문화와 역사를 배우게 되었는데, 이 과정에서 혐오의 대상도 고통이나 즐거움을 느끼는 똑같은 존재라는 사실을 이해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곳곳에서 성차별, 인종차별, 계급차별, 종교차별로 고통을 받고 있고, 국가 간 차별도 무시 못 할 정도로 심각할 수준이다. 국가가 만든 법률에 고통을 받거나 혐오를 부추기는 건 국가라는 사실을 인지할 필요가 있다.


언제까지 우리가 희롱되어야 하는 것일까? 



john@coconutpalms.info

사진 =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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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BY
코코넛 팜스
과학 오피니언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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