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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직장을 얻고, 가정을 꾸리고, 미래를 보장받기위해 대부분의 시간을 돈을 버는 것에 투자한다. 아이가 있으면 아이들에게 좋은 옷을 입히고 많은 것들을 가르치고 싶어 한다. 그리고 친구를 사귀거나 여행을 즐기고 싶어 한다. 이 모든 욕구가 행복해지기 위해서다.

하지만 우리가 사회에 첫 발을 내디뎠을 때 생각했던 방향으로 흘러가진 않는다. 사유, 불평등, 불안정, 불만족, 성차별 등 불행을 경험하는 게 대부분인데, 경쟁에 밀리면 빈곤, 가난이 괴롭히고, 그래서 이기기 위해 좌절과 배신을 겪어가면서 성공에 이르지만 성공의 댓가는 마음 한 켠에 자리 잡은 불신과 이기심뿐이다.

 

멋지고 좋은 집에 살아도 분열, 자살, 범죄, 굶주림과 관련한 다양한 문제들이 주변에 산재해 있으니 두렵기는 매 한가지, 그렇다고 우리 삶을 윤택해줄 만큼 과학이 급속도로 발전한다고 해서 이익이 마비되어 있는 사회에선 서로의 이익을 위해 서로 다투다보면 멀지 않아 문명 스스로가 자멸해 버릴지도 모르는데, 어느 누구도 이러한 삶을 바라지 않는다.

 

이러한 문제는 우리가 아직 현명하게 조직하는 방법을 찾지 못해서이다. 다행이라면 이 세계가 보다 나은 삶을 바라는 이들로부터 변화(=투쟁)되어 가고 있다는 점에 안심이 될 것 같다.

 

 

가족이라는 그룹

전국 876만 명에 달할 정도로 1인 가구 수가 매년 증가하고 있다. 국내 1인 가구 10명 중 7명이 '혼자 사는 삶'에 만족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1인 가구의 장점을 혼자만의 여가시간 및 자유로운 생활을 꼽는다. 1인 가구가 증가하는 이유엔 분명 무언가가 존재한다.

 

지금은 국가라는 거대 조직에 보호받는 위치에 있지만 이 집단을 쪼개면 기관, 단체란 집단이 있고, 그 집단을 다시 쪼개고 보면 가족이라는 소집단이 존재한다. 이러한 집단이 모여 거대한 국가라는 조직을 구성하고 있는 것이다.

 

가부장 문화에는 상당한 문제를 내재하고 있다. 가부장제(家父長制)란 한자 뜻을 해석하면 집에서 제일 높은 사람이 아버지가 되며, 가장이 가족 구성원에 대하여 권위적인 위치에 있고, 또 가족을 지도 통솔하는 위치이다.

 

원시 사회에선 집단(=가족)을 보호할 목적으로 신체적으로 우월한 남성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 탓에 신체적으로 떨어지는 여성과 아이들은 남성(=가장)에게 의존하는 위치에 서게 되고, 자연스레 육아와 가사 일을 맡게 되었다. 

 

보호할 책임이 있는 남성이 재물(=여자=아이=재산)을 빼앗기지 않으려면 세상의 온갖 풍파를 견대내야 할 만큼 거칠어져야만 했고, 편안한 삶을 영위하려면 높은 신분과 재산 모으기에 집착해야 했는데, 이 과정에서 전쟁, 살인 등 온갖 폭력성이 정당화되었다.

 

현대 사회에 들어 치안, 계급, 차별 등 많은 부분들이 나아졌다. 여성들도 외부 활동이 활발해지면서 성평등화 되어가고 있으며, 가사 노동과 육아 분담도 되는 추세이다. 이러한 변화는 국가라는 집단이 가장보다 안전한 울타리가 되어 주기 때문이다.

 

한편, 세계 곳곳에 남아 있는 가부장 문화가 뿌리 깊을수록 갈등, 불화, 불평등, 차별 같은 혐오가 매우 심하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하겠다. 

 

예컨대 엄격한 집안에 태어난 자녀는 조그마한 문제도 가장의 판단과 동의(=지시)에 의해 움직이면 성인이 되어서도 자유의지가 없어 권력자가 시키면 거부를 엄두조차 내지 못하고 지시(=복종)를 따른다. 심지어는 살인을 저질러도 죄책감을 느낄 수 없게 된다. 이는 삶의 의미나 기쁨, 행복도 느낄 수 없는 수동적인 인간이 되어 버리는 것이다. 증거라면 치매 증가 요인을 꼽을 수 있으며 한국 문화 역시 전형적인 가부장제의 폐해라 할 수 있겠다.

 

미디어를 보면 사업에 실패한 가장이 여자, 아이를 먼저 죽이고 자살하는 사례가 빈번하게 발생하는 것도 독립된 인격체로 인정해 주는 게 아니라 재산이라는 인식이 강하기 때문이다.

 

이제는 가부장제라는 원시적인 제도를 벗어나 하나의 인격체로 존중받고 진정한 자유로움을 느끼고자 하는 세대에게 1인 가구 증가는 좋은 변화의 신호탄일지 모르겠다.

 

 

기업의 이면

국가로부터 권리를 보호받고 있는 우리들은 다양한 삶의 혜택을 누리고 있다. 복지, 직업, 오락, 건강 등 삶의 전반적인 어려움까지 도맡고 있다. 이 때문에 우리들은 원시적인 소집단에서 조금이나마 벗어나 삶이 주는 행복과 기쁨을 누릴 수 있는 것이다.

 

국가를 지탱해주는 집단은 누구일까? 오랜 역사를 보면 기업의 양면을 엿볼 수 있다. 과거 전쟁과 인종 차별의 근본적인 문제가 바로 돈 때문에 벌어진 일이라 할 수 있겠다.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 한때는 영웅이었던 정복자 에르난 코르테스, 잉카제국 정복자 프란시스코 피사로 등 약탈, 학살을 일삼는 이들 뒤에는 감당하기도 벅찬 빚(=고리대금)이 있었고, 국가가 파산하지 않으려면 높은 이자를 갚기 위해 살인도 정당화해야 했던 시대, 흑인을 잡아다 팔거나 마약 밀거래를 통해 많은 돈을 벌어야 갚을 수 있었던 막대한 빚 때문에 아편전쟁과 같은 수많은 전쟁이 벌어졌다.

 

이렇게 비인간적으로 벌어들인 돈은 국가를 지탱하는데 사용되었다.

 

국가 부채가 계속해서 커지면 정부의 이자지급 부담도 당연히 커지게 되는데, 결국 빚을 줄이기 어려운 상황이 오면 채무불이행 또는 국가 파산을 선언하게 된다. 이는 어디까지나 상당한 빚을 졌을 때의 문제겠지만 코로나 여파로 국가가 파산한 곳이 실제로 나왔다.

 

가장이 번 돈으로 가정을 꾸리듯 정부가 걷은 세금으로 나라를 꾸려나간다. 저녁때 길을 걸을 때 가로등이 없어서 길을 걷기 힘들다고 누군가 무료로 설치해 주는 게 아니다. 치안, 교육, 건강 등 정부를 대신해줄 사람에게 일을 맡기는 건 상당한 비용이 들어간다.

 

현대 사회에도 과도한 부채를 줄이려고 무기를 팔거나 마약 거래를 암묵적으로 허용해주고 이렇게 걷어 들인 세금으로 이자를 갚거나 국가 운영에 사용되는 곳이 허다하다하겠다. 일자리 창출에 투자를 하는 건 노동력을 확보하기 위해서인데, 근로자가 많은 일을 해야 세금을 걷을 수 있고, 또 많은 아이를 가져야 근로자로 세금을 더 걷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을 국력이라 표현한다. 하지만 국가의 존재는 사람답게 해주기 위해서인데, 정작 국가를 유지하기 위해 돈을 벌어다주는 모양새다. 국가도 하나의 기업으로 비춰져서다. 

 

2018년 기준 세계행복지수 1위를 차지한 핀란드와 무엇이 다를까? 핀란드를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나라로 만드는데 영향을 미친 것으로는 아름다운 자연환경과 안전, 보육, 질 높은 공교육 등을 꼽는다. 핀란드 다음으로는 노르웨이, 덴마크, 아이슬란드, 스위스, 네덜란드, 캐나다, 뉴질랜드, 스웨덴, 호주 순이다. 

 

핀란드도 대화 주제가 돈일까? 유럽 사람에게 한국인 이미지는 여행객이 아니라 일하러 오는 사람처럼 느껴진다고 말한다. 당연하게도 텔레비전, 라디오, 지인, 친구, 가족 등 어디에도 빠지지 않는 주제가 돈이기 때문이다. 평생을 돈을 쫓고 돈에 쫓기다 보니 단순한 여행객도 일하러 온 사람으로 비춰지는 모양이다.

 

자신이 좋아하거나 관심 있어 하는 것을 쫓고, 그것을 이루려는 삶을 산다는 건 정말 행복한 일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현실의 벽에 부딪혀 본인이 좋아하지도 적성에도 맞지 않는 일을 해야 할 만큼 생계에 위협이 된다면 기업의 부당한 요구에도 더 잘 응하게 되므로 노예화의 기본조건이 성립된다.

 

불이익을 당할까봐 두려워 눈치만 보는 게 다반사, 이런 사람들을 더 잘 복종시킬 수 있다. 댓가, 요구에 응한다는 것은 동의(=협조)를 뜻하므로 원하는 방향으로 억압하고 착취하고 악용하여 목숨(=생계)을 담보로 좌지우지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이것을 거부할 용기가 있으면 악순환의 연결 고리 또한 분명 끊을 수 있으며 주변 역시 ‘정화’되어 깨끗한 환경이 만들어진다. 

 

하지만 거부하기보다 생각에 그치는 경우가 많고, 과정에 고통이 뒤따르기 때문에 감내할 수 없어 상대의 요구를 받아들이는 게 현실이다.

 

사회 전반적인 문제는 가부장제의 연장선상이라 할 수 있겠으며 인류 발전의 걸림돌이 될 수 있다. 자유로운 사고, 자유의지, 창조성 등 재능을 방해하는 가부장제는 일종의 계급 사회라는 사실 잊지 말아야 하겠다.

 

 

지상낙원

만약에, 완전 자동화에 의해 세계가 움직인다고 상상해 보자. 인간은 자신이 좋아하고 기쁨을 얻는 “일“에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게 될 것이다. 하지만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꺼라 말할지 모르겠다.

 

우리는 ‘즐겁지 않은 일‘을 하는 것 보다 ’즐거운 일’을 하는 게 우리 몸을 훨씬 건강하게 만들고, 기쁘게 한다. 누구에게는 어렵고 고된 일이 될 수 있지만 나에게는 쉽고 재미있는 일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원치 않는 일‘을 통해 몸에 상당한 부담을 주고, 스트레스가 장기화될 경우 다양한 질병에 노출될 수 있으므로 건강한 삶을 이어갈 수 없다. 

 

한편, ‘즐거운 일’은 우리를 몰입하게 만든다. 몰입한다는 건 산만한 상태에서 고도의 집중 상태가 되므로 우리가 가진 역량(=창조성)이 극에 달하게 해준다. 이 상태가 되면 흥미롭고 새로운 발견으로 이어져 과학적 진보로 연결되는 것이다. 

 

가나 호호이 지역의 ‘이위족’을 통치하는 왕 세바스 반사의 또 다른 직업은 자동차 정비공이다. 아버지와 형이 왼손잡이라는 이유로 자신에게 차례가 돌아왔고, 그것을 받아들여 왕위를 계승하게 된 것, 이위족은 왼손 쓰는 것을 부정하다고 믿는다. 

 

처음에는 정비공으로서의 삶이 좋아 왕위를 거절했지만 정비공 일을 하면서 왕을 수행하면 어떻겠냐는 제안을 받아들여 그 후 왕으로서의 이중생활이 시작되었다. 왕의 직무를 위해 전화나 이메일 회의를 진행하면서 어느 왕도 수행할 수 없었던 많은 일을 해냈다. 많은 학교, 최초의 여성 병원, 교량, 청소년 보호시설 등을 보급하면서 사회에 공헌하였다.

 


이런 일이 가능하려면 먼저 기본소득, 사유재산 폐지, 화폐 개혁 등 많은 부분이 개선될 필요가 있다. 기본소득은 일정한 소득이 들어온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돈에 대한 집착을 최소화하는 대신 좋아하는 일에 매진할 수 있게 해준다. 사유재산은 부모가 쌓아올린 재산이 대물림되지 않게 하면 부족한 재원 마련에 도움이 될 뿐 아니라 빈부격차를 최소화하고 돈의 순환도 잘 이루어진다.

 

여러분의 창고에 사용하지 않는 물건들로 가득 차 있을지 모르겠다. 구입한 제품 대부분이 몇 번 사용 못하고 버리거나 창고에 넣어두는 게 다반사다. 모든 물건을 임대로 해놓으면 물건 가치를 일정하게 유지시킬 수 있다. 가령 고가의 자동차를 여러 대 소유하였다고 가정하면 실제 사용이 몇 번 되지 않는다는 점을 생각해볼 때 모든 물건에 소유를 없애는 대신 빌리도록 하면 물건 생산량(=수요)이 일정해지면서 고가 제품에 대한 과시적 소비도 줄어들어 물건 가치가 균형을 이루게 된다.

 

기본소득은 생활에 필요한 최소한의 금액이다. ‘즐거운 일’을 하려면 필요에 의해 ‘일‘을 할 수 있지만 어디까지나 자발적인 선택일 뿐 단지 먹고 살기 위한 ’일‘이 아니기 때문에 ’일‘로 발생하는 다양한 부작용을 최소화할 수 있다.

 

이를테면 자녀를 먹여 살리기 위해 하는 ‘일’이란 명분이 사라지고, 돈을 쫓는 대신 ‘즐거운 일’에 관심이 집중되니 소유(=자녀)라는 개념이 사라져 가부장제라는 원시 사회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해준다. 또 정신적으로도 건강해져 다양한 질병에 면역이 생길 뿐 아니라 건강한 사회를 만들 수 있다.

 

연예인들이 사업에 뛰어드는 건 안정적인 수입을 원해서다. 연예인이란 직업 특성상 수입이 불안정하니까 뛰어드는 것이며 안정적인 수입을 바라는 마음은 누구에나 마찬가지다.

 

인류는 ‘돈’이 인생의 전부인 것처럼 삶을 살아간다. 유일하다면 종교는 빈자와 부자, 계급, 그리고 남녀 차별 없이 신이라는 대상에 동질감을 가진 이들로 조직되고 이를 계기로 인간관계를 형성하므로 단절된 사회를 연결한다. 종교의 뿌리는 ‘사랑’이다. 기업은 돈을 목적으로, 학교는 교육을 목적으로 조직되므로 돈을 벌려면 싫어도 가야하는 곳인 반면 종교는 인간관계가 형성되기만 하면 관계가 오래 지속되고, 자발적인 참여가 이루어진다.

 

종교의 장점을 사회에 적용해보면 가치 있는 삶을 목표로 유도해 주면 되는 것인데, 예를 들어 노동일을 대신할 수 있는 기계를 개발한다거나 사회를 효과적으로 조직하는 방법, 또는 즐거움이 될 수 있는 기구의 발견 등 사회 공헌 정도에 따라 새로운 보상체계를 구축하여 타인을 위해 두뇌를 사용하도록 유도한다면 인류를 급진전 시킬 수 있다. ’돈’은 어디까지나 개인의 이익을 위한 것이지 타인에게 도움이 되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이렇게 주요 관심사를 이타심으로 바꿔주는 것만으로 신분, 재산, 직업 등 누구도 불만을 제기할 수 없는 공정성이 확립된다. 부모의 재산이나 부동산, 로또 같은 횡재성으로 얻은 재산으로 일생을 편안하게 살아가는 이들보다 종교의 인물이 우리에게 오랫동안 귀감이 되어주는 것처럼 가치 있는 삶을 살아온 이들이 사회에 모범이 되는 것이다.

 

과학만 급속히 발전한다고 해서 계급 사회에선 지상낙원이 오진 않는다. 계급(=군대)은 복종을 뜻하므로 상대로부터 지배받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비인간적인 명령에도 복종해야할 위치에 있다면 파멸할 여지가 충분하고, 또 자유의지가 타인에 의해 결정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과거의 역사가 말해주듯 억압, 폭력을 일삼는 군주는 자기주장을 피력하기 위함인데, 특히 통제를 벗어나려하면 더욱 폭력적으로 변하게 된다. 이 말은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이라는 뜻이다. 한편 현명한 왕이 존중한다는 건 어디까지나 ‘타인‘의 입장에서 생각한다는 뜻이 되므로 이기적과는 거리가 멀다하겠다.

 

계급 사회란 어떤 사회에서 신분, 언어, 재산, 직업에 의해 비슷한 사람들로 형성되는 집단을 일컫는다. 진정으로 평등을 추구할 때 지상낙원이 찾아온다하겠다.

 

 

인격의 평등

대등한 조건에서 결혼하더라도 아이를 가진 여성은 자연스레 육아에 집중하게 되므로 사회적 지위를 잃게 된다. 아이를 돌보는 것만으로 사회와 단절되는 것은 물론 임신은 아직 여자의 전유물이므로 암묵적 성차별이 이루어진다. 하지만 과학과 복지가 이를 대신할 수 있다.

 

완전한 성평등이란 남자도 여자도 아닌 성, 즉 남녀, 나이 구분 없이 어린아이처럼 자유롭게 웃거나 행동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성인 남성이 천진난만하게 웃거나 행동하면 조롱꺼리가 되므로 트랜스젠더를 선택하는 경우가 실재하며 서로가 느끼는 오르가즘도 같은 맥락이다. 때문에 완전한 어린아이로 돌아갔을 때만 진정한 성평등이 이루어진다.

 

이런 변화는 성정체성이라기 보다 남자라면 진지하면서 거칠고 권위적이어야 하는 가부장제에서 비롯된 것으로 예쁜 옷을 입거나 여성스럽게 혹은 부드럽게 행동해서는 안 된다는 사회적 관념이 깊기 때문이다. 지금은 성의 경계가 사리지는 전환점이라 볼 수 있겠다. 

L.G.B.T 또는 일부다처제 등 자연스러운 현상에 불과한데, 한 여자가 한 남자와 평생을 함께 산다는 것도 사실상 어렵다. 한국의 이혼 사유를 보면 성격 차이가 가장 많았고, 그 다음이 외도, 경제적 문제, 폭력, 중독(=술=도박), 자녀문제, 친익척 문제 순이다. 

 

순수하게 만나 사랑을 한다고 해서 다른 환경에서 자라온 이들이 한 이불속을 덮는다는 건 곤욕일 수 있고, 또 이혼이 두려워 결혼을 이어가는 이들이 적지 않다. 사랑이란 있는 그대로 사랑하려고 노력하고, 자유롭게 해주었을 때 행복하다는 사실, 그런데 상대방을 지배(=통제)하려고만 한다면 쉽게 떠나버릴지도 모른다. 연애로 돌아가는 것도 나쁘지만은 않을 것이다.

 

기업, 미디어, 지인, 친구, 가족 등 다양한 곳에서 암묵적으로 행해지고 있는 성희롱, 성희롱 기준은 상대방이 성적인 불쾌감을 느꼈을 때다. 예를 들어 상대방의 허락 없이 신체 부위를 만진다거나 음란한 농담, 관계 요구, 또는 성적인 내용을 퍼뜨리는 행위 등 모욕감, 굴욕감, 수치심을 느끼게 하는 행위 등이며 고용, 지위를 이용한 사례가 많다는 점을 생각해볼 때 상대를 낮게(=하급) 생각한다는 것, 모두 존중하지 않는데서 비롯된다.

 

언어에도 차별이 녹아있음을 알 수 있다. 나이가 많거나 높은 계급에 위치하거나 혹은 서로 친분이 없는 경우에 쓰는 존댓말이 그렇다. 여러 지역에 비해 특히 한국어는 직급, 계급, 나이에 따라 세분화되어 있어 배우기도 어렵고, 수직관계가 뚜렷한 곳은 없을 것 같다. 

 

 

끝으로

우리는 많은 규칙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배가 고파 훔치는 것과 장난삼아 훔치는 것을 똑같은 범죄로 취급하는 건 이기적이게 하고 불평등을 만든다. 우리에겐 약간의 규칙만 있으면 된다. 이를테면 살인하지 말 것, 남의 것을 도둑질하지 말 것, 본인의 행동에 책임질 것 등 단순하면서 엄격한 몇 가지 규칙만 제외한 나머진 자유롭게 두는 것이다. 규칙을 어길 경우에만 엄하게 다스리되 상황에 맞게 유연하게 대처할 필요가 있다.

 

법에 무지한 사람이 처한 상황과 법에 대해 아주 잘 아는 사람의 차이는 확실히 다르다는 사실, 좀 더 나은 사회가 되길 바란다면 우리가 처한 문제를 자각할 필요가 있다.

 

도로를 막고 자동차 경주하는 이들을 범죄로 치부하기보다 경주를 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주는 것으로 문제는 해결된다. 이건 놀이터와 같은 동일한 이치라 볼 수 있겠다. 법으로 통제하면 쌓인 욕구불만은 다양한 범죄, 자살로 연결된다. 고층 건물을 맨손으로 오른다고 법으로 금지할 게 아니라 즐길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여 왕성한 혈기를 해소해주는 것이다.

 

하지만 안타깝게 주위에는 안되는 게 너무도 많은 게 사실, 이러한 통제(=제한)는 과학 발전을 더디게 한다. 예를 들면 스포츠카를 즐기는 이들을 위해 빠른 자동차를 개발하고 싶어 하는 개발자들의 욕구를 제한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자율주행 기술이 인기라면 경진 대회를 주기적으로 개최하면 이에 관심 있어 하는 이들이 참가하고, 또 개발자는 나은 기술을 펼쳐 보이고 싶어 한다.

 

이 규칙은 크고 작은 조직 사회에 동일하게 적용된다. 같은 결과가 나오더라도 억지로 진행하는 일에는 많은 에너지가 소모될 뿐 아니라 오래 지속되지 않는다. 기본적인 규칙 외에는 상황에 맞게 대처해주면 자유로운 사고 뿐 아니라 창조성을 높이게 해준다.

사피엔스 스튜디오 화면캡쳐

공간이 바뀌면 권력관계도 바뀌는 것으로 나타났다. 일반적인 사무실 자리 배치도를 보면 부장만의 공간이 사원과 따로 떨어져 있는데, 높은 직급일수록 항상 동선의 끝에 위치한다. 사학자 최호근 교수는 공간을 소득, 계급, 권력으로 빗댄다. 회장, 임원들이 평사원 사이에 끼어 앉아있는 순간 위계는 순식간에 내려간다고 한다. 그리고 행동거지도 자연스레 바뀌게 된다. 임원이 지시가 아닌 “이것 좀 해줄래?”라는 식으로 ‘명령’에서 ‘부탁’으로 바뀐다.

 

한국의 모PC게임 업체는 심지어 업무 중에 만화책이나 맥주를 마실 수 있는 공간도 마련되어 있다. 편안한 분위기가 되니까 생산적인 아이디어를 낼 수 있고, 권력관계를 느슨하게 해제한 덕분에 좋은 결과를 기대할 수 있는 것이다. H카드 회사는 자율좌석제로 되어 있다고 한다.

 

서울 강남구에 위치한 ‘페이스북코리아‘도 참고할 만하다. 업무 지시나, 근태관리, 결재 시스템이 없고, 본인이 원할 때 출퇴근하고, 휴가 사용도 상부에 알리지 않아도 되는 곳, 자율과 평등이 부여된 곳이다.

 

아이들에게도 마찬가지, 정말 필요한 건 통금시간이 아니라 자유롭게 두는 것이다.



palms@ coconutpalms.info
참고: 우먼컨슈머, 나무위키(가부장제), 어쩌다어른(황농문교수), 중앙일보, 한국일보, 밝은희망, 사피엔스스튜디오, 미디어S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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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BY
코코넛 팜스
과학 오피니언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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