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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2월 6일 튀르키예 지역에 규모 7.8의 지진이 발생했는데, 당시 지진으로 인해 튀르키예와 시리아에서 현재까지 5만여 명이 목숨을 잃었다. 그 뒤 20일 규모 6.4의 지진이 또 발생했다.
 

터키 당국은 6일 지진 이후 여진이 6000회 이상 기록됐다고 밝혔으나, 이 지역 BBC 취재진은 이번 지진은 이전보다 훨씬 강하게 느껴졌다고 말했다. 이번 지진으로 가진 것 모두를 잃어 절망과 고통만 남았을 것으로 생각된다.
 
한편,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곳에서 사는 삶은 어떨까?
 
코로나 난리통에도 전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나라는 어디일까? 2022년 세계행복보고서를 보면 1위에 오른 핀란드를 포함해 상위 10개국 중 절반이 북유럽 국가가 차지한 것으로 나타났다.
 
핀란드는 5년 연속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나라로 뽑혔고, 핀란드에 이어 덴마크가 뒤를 이었다. 안정적인 정부 시스템, 무상 교육과 의료, 인권 존중 등 여러 부문에서 골고루 높은 점수를 받은 덴마크가 2위를 차지했다. 오랫동안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나라 1위에 올랐던 덴마크는 2022년엔 2위에 머물렀다. 덴마크는 나라 자체가 크지 않기 때문에 도시에서 그다지 멀지 않은 곳에 대자연이 펼쳐진다. 백사장 해변, 그림 같은 섬과 유리알 같은 호수 등 휴식을 취할 공간이 다양하다.
 

3위는 아이슬란드가 차지했다. 아이슬란드는 한국의 면적과 비슷하다. 면적은 비슷하지만 인구는 겨우 34만6000명 정도로 인구 대부분이 수도 레이캬비크에 몰려 있다. 대표적으로 낮은 범죄율, 높은 생활수준, 무료로 제공되는 고품질 교육, 낮은 실업률 등을 자랑한다. 아이슬란드의 아름다운 자연도 행복 지수에 큰 영향을 끼친다.
 
멋지고, 편안한 곳에 살고 싶어 하는 건 누구나 같은 마음일터, 튀르키예 지역과 대조적이다.
 
한편, 통계청의 발표(2022 국민 삶의 질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인들이 느끼는 삶의 만족도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가운데 최하위권에 머무른다. 우리보다 아래는 콜롬비아와 튀르키예지만 수치상으로는 그렇다.
 
아이러니하게 행복도가 높은 핀란드는 전 국민의 19%가 정신질환을 앓고 있어 우울증과 알코올중독비율이 가장 높다. 한때는 자살률도 최상위권이었다. 하지만 사회에 대한 신뢰도가 높아 높은 세금에도 불만이 없고, 더욱이 부패 없는 나라다.
 
한국은 행복도가 높은 유럽에 비해 인구 자체를 경제지표로 생각하는 곳이 아닌가? 높은 과외, 높은 실업률, 더구나 노동 시간 제도에 1주에 64시간까지 일할 수 있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64시간을 6일로 나누면 하루 11시간을 근무하는 셈이다. 건강에도 빨간불이 켜질 수밖에 없다. 또, 월급의 98%를 대출 갚는데 지출하는 사람이 있다는 기사가 나올 정도니 정말 죽도록 일만하다 죽어야 한다. 공공요금이 치솟자 국민의 어려운 이 와중에 정치인들의 월급이 올랐다. 
 
분명히 말하건대, 군제도만 없애도 굶어 죽는 사람이 없고, 정치인의 월급만 대폭 삭감해도 노인빈곤이 사라진다. 2022년 국방비 순위를 보면 한국은 502억 달러로 10위를 차지했고, 정치인의 월급이 과한 건 분명 이익에 마비된 형태이다.
 
인구가 많으니까 주 64시간 제도가 논의되는 것인데, 아이슬란드처럼 인구가 적으면 적게 일하고도 많이 가질 수 있고 인구가 적으니 그만큼의 땅을 자연에게 되돌려줄 수 있어 행복도가 올라가게 된다. 하지만 국가 입장에선 좋아하지 않겠지. 인구가 곧 조세로 연결되는 것인데, 출산율이 높아야 많은 돈을 불릴 수 있는 것이므로 정부 입장에선 인권은 온데간데없다.
 
일단 아이를 가지면 일정 기간 동안 한 명당 돈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언제까지나 부양 의무를 가져야 하는 부담이 있다. 이 말은 성인이 되어도 경제적 활동을 못하면 생활은 더욱 어려워지는 것이므로 이를 감안해서 낳아야 한다. 부담은 곧 고통으로 연결되고, 고통은 상대에게 그대로 전달되는 것이므로 사회가 삭막해질 수밖에 없다.
 
 

끝으로

국민의 삶을 책임지고 있는 정부가 땅에 재물을 쌓아두는 격이니 행복은 딴 세상의 이야기처럼 들릴지 모르겠다. 우리는 이득에만 집착한다. 그렇다고 해결 방법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 튀르키예 대지진처럼 모든 재물을 한순간에 사라진다고 상상해보라. 
 
재물은 있다가도 없어지듯 천재지변으로 모든 것을 잃는 것이 현실적이니 소유가 아닌 대여로 해놓으면 재물에 더 이상 집착하지 않게 된다. 그리고 사회가 원시적일수록 행복도는 비례적이다.
 

원시 문화는 과도한 소비를 줄여주고, 임대는 다툼을 없애준다. 많은 재물을 소유하려는 심리는 이기심을 만들고 경쟁심을 만들기 때문이다. 이것이 다시 타인에게 고통을 준다.
 
하지만 원시는 과학이 더디게 발전한다는 문제가 존재한다. 이 문제를 보안하기 위해 모든 이에게 생활에 필요한 최소한의 생계비용과 주거를 제공하는 것, 이것만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대부분의 사람은 최저의 비용에 만족하며 살겠지만 그렇다고 세상이 무너지진 않는다. 무언가를 창조하고 싶어 하는 이들에게 놀이터를 만들어 주고,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다는 조건에 자유롭게 내버려 두면 분명 높은 성과가 나타날 것으로 생각된다. 창조성이 뛰어난 이들은 전 세계의 1% 정도 밖에 되지 않겠지만 많은 것을 창조하고 싶어 하고 또 사회의 공헌도에 따른 보상이 주어진다면 분명 과학적 발전으로 연결된다. 모두가 무기를 내려놓고 벽을 허문다면 분명 망상에 그치지 않을 것이다.
 
우리의 삶에 여유가 필요하다. 
 
여유를 느끼지 못할 만큼 바쁘게 살아간다면 스트레스 때문에 다툼과, 폭력을 만들고 전쟁을 야기할 것이다. 바쁘게 돌아가는 세상일수록 여유를 찾을 수 있는 사회가 되었으면 한다.
 
한편,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벌써 1년이 되었지만 여전히 전쟁 중이다. 수만 명의 난민이 발생했고, 집을 잃어 가진 모든 것들을 잃어 버렸다. 하지만 이 전쟁으로 많은 이득을 취한 이들 또한 존재한다. 
 
전쟁으로 생활이 어려워지고, 공공요금과 물가가 폭등하고, 가정이 파탄나고, 몸을 뉘일 곳조차 없으니 누가 이런 최악의 환경에 태어나고 싶어 하겠는가? 
 
좋은 환경에 태어나고 싶다고해서 태어날 수 있는 게 아니듯 눈을 떠보니 자유롭게 물 한 모금조차 마실 수 없고, 어떤 이는 부족함 없이 일생을 편안하게 살아가는 것 역시 불평등하고 불만족스런 삶일 터 어찌할 도리가 없다.
 
말이야 평등이지 차별은 심하고, 가난은 원한 것도 아닌데, 그것도 폭력적이고 엄격한 가정을 원한 것도 아닌데 선택권이 없다. 잘만 태어나면 일생을 편안하게 지낼 수 있으니 인생은 복불복과도 같다.
 
하지만 생각만 달리 한다면 이러한 차별을 분명 평등하게 바꿀 수 있는 해결책이 있다. 복잡하게 생각할 게 아니라 모든 걸 단순화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조직의 경우 너무 세분화하면 관리가 어렵고, 생각과 행동에 많은 제약이 따르게 하므로 스스로 생각하지 못하게 만든다. 법이란 것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법 테두리 내에서만 생각하고 행동해야 하므로 폐쇄적이고 자유롭지 못하게 한다.
 
모든 건 유동적고 가변적이어야 한다.
 
튀르키예 지진으로 범죄율이 높아지고 있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이들 범죄는 대부분 배가 고파 빵을 훔치는 정도인데, 무조건 엄한 처벌을 가하는 것은 아니라 생각한다. 반면 어렸을 때부터 잘못 들인 습관은 평생을 가는 것인 만큼 같은 범죄라도 달리해서 처벌할 필요가 있다.
 

한편, 우리는 슬픈 세상에 살고 있는 건 틀림없는 사실, 어렸을 때부터 사랑을 배우지 못하고 자라온 이들은 집착, 절망에 쉽게 빠진다. 학교는 돈 벌기위한 방법을 배우는 곳일 뿐 사랑을 가르쳐주지 않는다.
 

정작 사랑에 메마른 이들을 위한 학교는 없는 것 같다.



palms@ coconutpalms.inf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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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BY
코코넛 팜스
과학 오피니언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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