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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성년 범죄는 하루 이틀의 문제가 아니다. 지난 8월 술에 취한 30대 가장을 무차별 폭행해 숨지게 한 사건이 있었으며, 지난 6월 강원도의 한 고등학교 1학년생이 집단 따돌림 등 학교폭력으로 옥상에서 투신해 세상을 떠난 사건이 있었다. 미성년 폭력은 학교폭력이 가장 많을 것으로 생각된다.

 

지난 7월 광주 고교생 3명이서 동급생을 장기간 때리고 괴롭히는 등 상해를 입혔으며 놀이를 빙자한 폭력을 일상적으로 저질렀고 심지어 이중 한 명은 죽기 전날 쉬는 시간에 뺨을 때리기도 하였다고 한다. 

 

언뜻 보면 이 폭력이 자신의 이익, 분노, 불쾌, 불행, 불만족 등일 수 있지만 혐오감을 빠트릴 수 없을 것 같다. 혐오의 사전적 의미는 어떠한 것을 증오, 불결함 등의 이유로 싫어하거나 기피하는 감정을 말한다.

 

안락한 환경에서 자라온 아이가 처음으로 본 것이 장애를 앓고 있거나 혹은 술에 취해 비틀거리는 사람을 접했을 때의 느껴지는 불결한 감정, 그리고 불쾌한 냄새를 풍기는 노숙자, 구걸하는 사람들 등을 처음 접했을 때의 그 감정은 상당히 부정적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부처의 유년시절 일화가 참고가 될 만하다. 궁전 안에서만 생활하던 싯다르타는 궁전 안의 안락함이 모든 인간의 생활인 줄 알았으나 어느 날 궁 밖으로 나와 세상을 보았을 때 인간의 고통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밭갈이하는 농부를 보고 인간의 고통을 알게 되었고, 새에게 잡아먹히는 벌레를 보고 큰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또 쇠약한 노인, 병들어 신음하고 죽어야 하는 생로병사의 운명에 슬픔을 금치 못하였다고 한다.

 

사람마다 느끼는 감정이 다르겠지만 인간의 고통이 누구에겐 동정이나 연민을 느끼게 할 것이고 누구에겐 혐오감을 느끼게 할 것이다. 이러한 감정은 폭력과 차별을 만든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학교폭력도 마찬가지, 본인보다 가난하다거나 정신질환을 갖고 있다고 가정하였을 때 차별이 되고 폭력에 노출되는 것이다.

 

 

쓰레기 섬

어느 옷가게 매장은 청소한 뒤의 오물을 하수구에 버린다. 그런데, 그 옷가게엔 하수구가 없어서 대로변 하수구에 버려야 했는데, 그 사실을 알 리 없던 시민으로부터 상습적인 민원 때문에 곤욕스러워해야 했다. 매장 안에서 버려서 대로변 하수구로 흘러들어가나 대로변 하수구에 바로 버리나 매 한가지, 그러나 더러운 것을 실제로 보는 것과의 감정 차이는 상당한 불쾌감을 주는 일이다.

 

재개발이 진행되는 곳에는 쓰레기 불법 투기가 성행한다. 그래서 해당 지역에 불법투기 집중단속이 이뤄진다. 한 번은 애들 4명이 얼굴 특징을 안경착용자로 지목해 버려 한순간에 쓰레기 불법투기자로 몰려 2개월가량을 밤낮 가리지 않고 주민, 구청 단속반에 감시, 관찰 받아야 했고 주택 주변에 오물과 쓰레기를 수시로 버리는 등 해코지당하는 일이 있었다. 소문이 퍼져나간 만큼 곤욕의 연속인 것이다.

 

나의 공간에 지저분하고 냄새하는 쓰레기가 아니라 깨끗하고 쾌적한 것들이 놓여있길 바라는 마음은 모두 같을 것이다. 하지만 쓰레기는 사람이 사는 곳이면 반드시 배출되며 오래 머무는 장소이면 버려질 확률이 높아진다. 특히 공원이나 휴양지 같은 장소엔 머무는 시간이 길어지니까 그만큼 쓰레기도 많이 배출된다. 불법투기를 단속하는 이유엔 나름 깨끗한 환경을 바래서이기도 하지만 쓰레기 처리에도 상당한 인력과 비용을 필요로 한다.

 

하지만 물품 구매비용 따로 폐기물 처리비용이 따로 내다보니 이중으로 지불해야 하고 또 어떻게 배출해야하는지를 모르는 경우가 많다. 거기다 쓰레기를 버리려면 별도로 종량제 봉투를 구입해야하는 건 불편한 부분일 것이다. 지역 주민이 매우 협조적이어서 도시가 깨끗해졌다고 한들 쓰레기가 잘 처리되었다고 보긴 어렵다.

 

크랩 화면캡쳐

아프리카 가나의 수도 아크라에는 전 세계의 사람들이 버린 옷들이 모여 이루어진 쓰레기 강이 존재한다. 소들은 산더미 같은 옷 위에서 풀 대신 합성섬유를 뜯고 있는 모습도 포착되기도 하는데, 도시가 깨끗해진 것처럼 보일뿐 쓰레기를 분해해서 자연으로 되돌리지 않는 이상 돌고 돌아서 지구 어딘가에 쌓아 두는 것이다.

 

이 문제는 빈부격차를 단편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며, 지구의 어두운 부분을 눈가림하여 마치 모든 사람들의 안락함으로 포장한 것에 불과하다. 한편 종량제는 합법이고, 봉지에 넣으면 불법이라면 아프리카에 수출을 가장한 쓰레기 투기(投棄)가 어찌 합법적이라 할 수 있을까, 무책임하고 부당한 현실을 이해할리 없는 아이들에게 그저 혐오감만 키워줄 뿐이다.

 

나의 공간이 깨끗해지고 싶은 마음은 누구나가 같은 마음일 터, 타인의 공간도 소중하다는 사실 잊지 말아야 하겠다.

 

 

캐나다에 엄청난 착각

아래 그림이 말하려는 건 우리가 상상했던 것과는 달리 원천(源泉)적으로는 석탄에서 생산된 에너지가 다른 경로를 거쳐 가정에 전기가 공급되는 과정을 그린 것으로, 청정에너지라고 믿고 있던 에너지가 실은 우리에게 엄청난 착각을 불러일으키고 있음을 말해 준다.

 

한국 라엘리안 무브먼트 페이스북

한국에 쉽게 볼 수 없던 장애인을 캐나다에선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캐나다에 장애인들이 국가로부터 받는 재정적 혜택이 많다. 심각한 장애를 지녔거나 장애로 더 이상 일을 할 수 없는 경우에는 장애인 당사자가 사망하더라도 가족에게 매달 지급되는 보조금이 상당하다.

 

이외에도 버스는 100% 차체 바닥이 낮은 저상버스, 상가마다 낮은 문턱, 계단이 아닌 경사로를 설치하여 노인·임산부들도 편리하게 이동할 수 있게 해주었다. 이곳 장애인은 중증이 아니라면 전동 휠체어를 이용해 혼자서 쇼핑하고 커피 마시고 산책하는 일이 자연스럽다. 레스토랑이나 카페에는 장애인 전용 구간이 따로 있을 정도로 장애인을 위한 배려가 곳곳에 녹아 있는 도시다.

 

캐나다의 이러한 노력에는 무장애 도시를 실현하려고 했던 의도가 있었기 때문이다. 공공시설·교통·정보시스템 등 생활 전 영역에 대한 접근권이 모든 주민에게 평등하게 보장된다. 장애인도 쉽게 접근할 수 있으면서 차별이 없고, 모두가 평등하게 배려한다.

 

이뿐만이 아니다. 약간의 장애가 있어 보이지만 휠체어를 타고 정문에서 손님들을 반기는 월마트 직원을 만날 수 있다. 백화점이나 몰, 마트, 도서관, 카페, 학교, 어디를 가든 쉽게 장애인과 마주쳤기 때문에 캐나다에 유난히 많은 것처럼 보이는 것이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한데 어울려 살아가는 것이 너무나 자연스러운 곳이면서 이런 인식이 형성되어 있기 때문에 혐오감을 느끼는 이들이 없다. 어릴 때부터 한데 어울려 일상을 공유하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지니, 어른이 된 후에도 장애인이라고 해서 불편한 시선으로 바라보진 않는다.

 

한편 한국은 어떨까? 무슨 죄를 지었는지 장애 유무에 따라 차별로 이어진다. 호텔 정문에 장애인을 세웠다는 이유로 해고 사유가 되고, 아파트 입주민의 갑질로 고통 받는 경비원이나 택배 차량을 아파트 내 출입을 제한하는 것도 지저분하고 더러운 것을 감추려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이러한 차별이 빈부격차를 만들고, 혐오감을 키우는 것이다. 지저분한 부분도 사회의 일부분임을 알려줄 필요가 있다.



palms@ coconutpalms.info
참고: 아시아경제, 매일경제, 위키백과, 네이트뉴스, 크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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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BY
코코넛 팜스
과학 오피니언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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